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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봉의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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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춘천 봉의산성은 춘천의 봉의산에 위치한 산성으로, 7세기 이후 신라에 의해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217년 거란족의 침입, 1253년 몽고군의 침입 등 격전지였으며, 임진왜란 때는 원호가 주둔했고, 한국전쟁 중에는 북한군을 저지하는 격전지였다. 산성 둘레는 약 1,280m이며,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일부 구간에 대한 복원 공사가 진행되었다. 또한 몽골군의 침입에 맞서 싸우다 순절한 이들을 기리는 봉의산 순의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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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봉의산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봉의산성 정보
춘천 봉의산성 이미지
춘천 봉의산성
국가대한민국
위치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소양로1가 산1-1번지
종류기념물
지정 번호26
지정일1979년 5월 30일
시대고려시대
면적270,909
수량1곽
문화재청 ID23,00260000,32

2. 역사

산성이란 적의 침입에 대비해 전투에 유리한 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성을 말한다. 춘천 봉의산성을 언제 쌓았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7세기 이후 신라에 의해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217년(고종 4년) 거란족 일파의 침입으로 안찰사 노주한이 전사하였다.[1] 1253년(고종 40년) 몽고병이 침입하자 춘천 주민이 '''이 산성'''으로 들어가 항전하였는데, 몽고병의 포위가 장기화되면서 성안의 식량과 식수가 부족하여 소와 말을 잡아 그 피를 마시는 상황에 이르렀다.[1] 또한 돌파구 마련을 위해 교주도 안찰사 박천기가 조직한 결사대의 공격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마침내 산성이 함락되자 대부분의 군·관·민이 죽음을 당하였다고 한다.[1]

임진왜란 당시 강원도 조방장 원호가 춘천 봉의산성에 진을 쳤었다.[1] 한국전쟁 때에는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하던 격전지이기도 하였다.[1]

산성의 둘레는 약 1,280m에 달하며, 높이는 5~6m 내외이나 지형에 따라 다르다. 성벽은 대체로 붕괴되었으나 일부 구간에는 석축이 남아 있으며, 일부 구간은 지난 1991~1994년에 복원 공사를 하였다.[1]

2. 1. 고려 시대

1217년(고종 4년) 거란족 일파의 침입으로 안찰사 노주한이 전사하였다.[1] 1253년(고종 40년) 몽고병이 침입하자 춘천 주민이 '''이 산성'''으로 들어가 항전하였는데, 몽고병의 포위가 장기화되면서 성안의 식량과 식수가 부족하여 소와 말을 잡아 그 피를 마시는 상황에 이르렀다.[1] 또한 돌파구 마련을 위해 교주도 안찰사 박천기가 조직한 결사대의 공격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마침내 산성이 함락되자 대부분의 군·관·민이 죽음을 당하였다고 한다.[1]

2. 2. 조선 시대 ~ 한국전쟁

임진왜란 당시 강원도 조방장 원호가 춘천 봉의산성에 진을 쳤었다.[1] 한국전쟁 때에는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하던 격전지이기도 하였다.[1]

3. 구조 및 특징

봉의산성은 적의 침입에 대비해 전투에 유리한 봉의산의 가파른 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산성이다.[1] 산성의 전체 둘레는 약 1,280m이며, 높이는 5~6m 내외이나 지형에 따라 다르다.[1] 성벽은 대부분 붕괴되었으나, 일부 구간에는 석축이 남아 있으며,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일부 구간에 대한 복원 공사가 진행되었다.[1]

4. 봉의산 순의비

춘천의 진산인 봉의산은 춘천과 역사를 함께한 상징이며, 곳곳에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다. 고려 고종 40년(1253)에 몽골군이 춘천을 침입했을 때, 춘천 백성과 관리가 봉의산성에서 몽골군에 맞서 끈질기게 항전했던 곳이다. 군세가 적보다 약하고 식수마저 끊겨 우마의 피로 갈증을 해소하면서도 나라를 지키려는 굳은 의지로 저항했으나, 결국 산성이 함락되었다. 참전했던 관민들은 함께 전사했고, 끝까지 살아남은 이들은 적에게 굴복하여 욕되게 사느니보다 깨끗하게 죽음을 택하여 가족과 함께 자결했다. 나라를 지키려다 희생된 선열들의 숭고한 피가 스며있는 산성은 허물어진 채 오늘날까지 그 흔적만 남아있지만, 대의를 위해 순절한 이름 모를 수많은 선열들의 절의는 세월 속에 잊혀가고 있다. 이에 이분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 충절을 후세에 기리기 위해 1983년 6월 2일에 이 비를 세웠다.

5. 현대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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